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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간첩 몰래 위대하게' 정용선 교수의 영화 리뷰
    카테고리 없음 2021. 8. 14. 06:57

    극한 직업

     

    "스파이"

     

    ◆한반도에는 오랫동안 첩보 시대가 존재했다. 지금도 그 시절인지는 모르겠지만. 간첩은 총으로 무장한 채 대통령을 죽이려고 남파된 무장공비부터 군부대의 기밀을 캐내거나 산업정보를 빼내는 역할까지 다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 없는 간첩이 주변에 있으니 경계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간첩식별법도 교육받았다. 이른 아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나 신발을 신고 있는데 흙이 묻어 있으면 신고하라는 교육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물건값을 잘 모르거나, 우리가 잘 쓰지 않는 '호상'이라고 말하거나 '일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의심해야 합니다. 담뱃값이나 버스요금을 모른다면 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배웠다. 보고 의심하고 의심되면 신고하는 것이 미덕이자 윤리였다.

    영화 '스파이' 포스터 출전=네이버 영화

     

    간첩활동 10년이면 작전도 생활이 된다.

     

    영화 <간첩>(2012)은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는 간첩에 대한 이야기다. 수많은 간첩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간첩이었을까 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 고정간첩이 3만 명 있다는 주장도 있다. 5만 명이라는 말도 있다.

     

    놀랍기는 하지만 간첩이란 말 대신 간첩이란 말을 써보면 이해가 간다. 정보를 얻으려는 간첩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것도 정보고 저런 것도 정보가 되겠지. 간첩의 국적도 다양할 것이다. 북한도 있을 것이고 미국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일본 중국 러시아 간첩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 주재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가 중국에 EU 기밀을 넘긴 간첩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저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으니 간첩이 얼마나 많겠는가.

     

    간첩의 주요 임무는 무엇일까. 정보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정보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요 기관에 들어가 비밀금고를 열고 서류를 꺼내 사진을 찍어야 할까. 군부대 주변에 들어가 숨어서 망원경으로 내부를 봐야 하는가.

     

    AI 시대의 스파이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인터넷 시대에는 간첩의 역할도 활동도 바뀐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해킹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 구글 지도에서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많은 일을 컴퓨터가 하듯 간첩이 하는 일도 막노동에서 지식노동으로 바뀌었다. 간첩은 이제 뭘 해야 하나.

    영화 '스파이'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스파이'(2012)에 나오는 스파이는 고정 스파이다. 이들이 간첩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 것은 10년 만에 위에서 내려온 지령 때문이었다. 간첩 10년이면 작전도 생활도 된다!생활밀착형 리얼 스파이극이란 문구처럼 10년이 흘렀다. 어려운 형편에서 공작금을 마련하며 살아가야 하는 '간첩'이란 직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간첩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넉넉지 못한 공작금을 받으면서 간첩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면 살아가는 현실이 팍팍하다. 간첩조직의 우두머리이자 간첩 22년째인 김 과장은 3년 전부터 공작금이 없어지자 중국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밀수해 판매하며 생활하고 있다. 남한에서 먹고살기도 힘든데 북에 있는 가족들의 삶까지 책임져야 한다.

    영화 '스파이'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암호명이 '강대리'인 여간첩은 복덕방을 운영하며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한 10만원의 회비로 머리 잡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지만, 끈질긴 마을 아주머니다.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하고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신분 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윤 고문, 해킹 전문가로 농촌에 정착한 우 대리는 FTA 협정에 따라 소값 폭락에 시달린다며 촛불시위를 주도한다. 지령보다 더 심한 물가 상승에 맞서 싸워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0년 만에 내려진 지령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한국으로 망명한 이용성 외무상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당의 지령보다 관심이 쏠리는 것은 보상금이었다. 이용성이 망명하면서 받은 보상금이었다. 당의 명령을 수행하고 남은 보상금을 나눠 갖기로 의기투합한다. 영화는 그렇게 이념이 퇴색되고 일상에 물들어 버린, 어쩌면 현대인의 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서민의 일상이 반추되고 있다. 남북관계를 견인하는 것은 이념보다 경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포스터 출처=네이버영화

     

     

    "저의 남파 임무는 동네 바보예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는 인터넷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극적인 리얼리티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남파 특수공작부대인 5446부대 출신의 최고공작요원 원류환, 북한 최고위층 간부의 아들이자 원류환에 버금가는 실력의 리혜란, 최연소 남파간첩 리혜진이 남한에 정착해 임무를 기다린다.

     

    20,000:1의 무서운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최고 엘리트 공작요원 원류환은 부대원들에게 전설적인 존재이자 우상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역할은 변두리의 바보 박봉구다. 슈퍼에서 잡일을 거들면서 얼빠진 바보로 동네 아이들이 놀림을 당하며 살아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보짓을 하여 의심을 피하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동네 아이에게 맞거나 심지어 길거리에서 똥을 싼다.

     

    원류환의 동료이자 북한 최고위층 간부의 사생아인 이혜란은 가수 지망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살아간다. 이해란의 임무는 오디션에 합격해 로커가 되는 것이었다.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통과한 이혜란은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두 사람 앞에 또 다른 남파공작원 리혜진이 다가온다. 원류환을 끔찍이 사모하던 최연소 남파공작원으로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됐다. 이처럼 북한 최고 엘리트의 남파공작원은 마을의 바보,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살아간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컷 출처=네이버영화

     

    신분을 숨기고 살아온 이들에게 임무가 떨어진다. 임무는 전원 자결이었다. 남북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남파공작부대인 5446부대의 해체를 명령한 것이다. 임무를 맡은 겐류마루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임무를 수행하라는 것뿐이었다.

     

    원류환을 제거하기 위해 5446부대원의 교관이자 대장인 김태원이 내려온다.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특수부대 대장과 마지막 결투를 마치고 겐류마루는 지난 2년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뛰어내린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틸컷 출처=네이버영화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로 남파공작원을 다뤘지만 남북 대결은 없었다. 남파공작을 전담하는 특수부대가 등장하고 국정원이 나오지만 남북 전쟁은 아니었다. 특수부대 조직을 해체하라는 명령을 받은 부대장과 부대원들의 전쟁이다. 국정원은 싸움을 멈추려고 분투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남북관계에서 남파공작원의 존재는 은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그저 소박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아이로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원류환을 둘째 아들로 알고 있는 슈퍼 아줌마의 사랑도 눈물겹다. 먹고, 싸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가족의 깊은 정이 느껴진다.

     

    영화는 흥행했다. 원작의 힘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 역을 맡은 김수현 이현우 박기웅의 캐리가 빛을 발한 영화다.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배우를 보며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남북한을 그린 영화에서 이야기의 리얼리티보다 상상력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영화였다. 잘생긴 스파이라는 흐름도 따르는 영화다.

     

    영화 간첩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파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다. 스파이라면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무서운 존재를 먼저 떠올렸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냉엄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은 내 이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를 관통했던 이념, 이데올로기보다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해진 2010년대 한국의 모습을 간첩을 통해 보여준다.

     

    글=정영선 교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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